"배는 떠다니는 빌딩이다. 배의 각 배전반에 전기가 배분된다. 배전반에 문제가 생겨 블랙아웃 되면 선박이 해상에서 좌초돼 인적·경제적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다. 우리 회사가 주력하는 부분은 바로 이 배전반이다."
1979년 설립된 KTE(부산 강서구)는 선박과 해양플랜트에 사용되는 각종 배전반 및 제어기기를 생산하면서 국내 조선 산업의 역사와 동고동락해왔다. 배전반은 일반 가정집의 '두꺼비집'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선박은 자체 발전기를 가동해 생산한 전기를 배의 각 부분으로 나눠주는데, 가정용 두꺼비집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고도의 정밀성과 안정성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KTE 구본승(48) 대표는 "가정집 전기는 발전소라는 한 가지 소스에서 나오지만 배는 발전기가 4대다. 전기 소요량에 따라 2대에서 4대까지 최적의 발전기 가동을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시스템을 만들다 보니 섬세한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배의 전기 시스템, 제어 장치, 전기 수요가 있는 각 부분에 전원을 공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구 대표는 중학생도 알 수 있도록 쉽게 회사 소개를 해 달라는 요청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선박 및 해양플랜트에 사용되는 각종 배전반 및 제어기기를 생산하는 KTE의 설비들.
KTE는 상선뿐 아니라 방산용·해양플랜트용 배전반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고, 전장 시스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사이드 트러스터 등 선박용 추진기 분야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KTE는 2014년 함정용 배전반을 생산해 80여 척을 납품했다. 구 대표는 "영국 노르웨이 태국 해군이 사용할 수출용 함정에도 국내 업체 최초로 배전반을 납품했다. 함정과 같은 방산용 배전반은 충격, 진동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상선보다 더 우수한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 포를 맞아도 전기가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에 테스트 통과가 까다롭다"고 말했다.
현재 KTE는 미국 해군 기준과 함께 나토(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기준까지 충족하면서 업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잠수함용 통합 플랫폼 관리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3000t급 한국형 잠수함에 실용화할 예정이다.
'월드클래스 300' 선정을 계기로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구 대표는 2세 경영인이다. 삼성전자에 근무하던 구 대표는 영국 노팅엄 대학에서 MBA 과정을 수료하고 1998년 아버지가 운영하던 KTE로 직장을 옮겼다. 2012년부터 회사를 맡고 있다.
당시 상선시장의 규모가 줄고, 해양플랜트 시장이 급격히 팽창했지만 해양플랜트용 배전반 대응이 늦어 70억 원의 적자가 났다. 2013년에는 중국 대련에 동반 진출한 STX대련의 부도사태에 직격탄을 맞아 무려 160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그는 "한 마디로 불 끄는 소방수 심정이었다. 대표이사로 취임해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에 하루도 맘 편하게 지내보지 못한 것 같다. 조선경기 침체와 중국 사업 악재 등이 겹치면서 지난 2012년, 2013년은 최악의 해였다"고 회상했다.
구 대표가 취임한 이후 KTE는 기존의 배전반 전문 업체에서 조선·해양·방산 분야의 전기·제어 시스템통합(SI·System Intergration) 전문업체로 변신을 시도했다. 해양플랜트용 저압배전반 자체 모델을 개발해 상용화하는 성과도 거뒀다. 해양플랜트용 배전반은 납품가와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에 앞으로 해양플랜트 경기가 살아나면 매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새로운 도전이 결실을 이루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중국 대련 사태로 적자 늪에서 허우적댄 이듬해인 2014년 역대 최대인 911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배전반 비중이 81%, 트러스트 15%, 엔지니어링 서비스가 4% 수준이다. 2015년은 1000억가량 매출을 올렸다. 그는 "방산용 배전반과 잠수함용 제어시스템 납품을 발판으로 이뤄낸 성과"라고 기뻐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다시 신발 끈을 조여야 한다. 기존 수주 물량으로 올해까지는 경영에 큰 걱정이 없지만 내년부터는 수주 전망이 다소 불투명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해양플랜트와 방산수출에서 답을 찾겠다는 각오다.
"미국과 영국, 노르웨이, 태국 해군 군함 등에 패널을 비롯한 제어장치를 납품하며 실적을 쌓아가고 있다"며 "관련 기술 개발에 더욱 매진해 10년 후 조선 해양, 방산 시스템 통합 전문 업체로서의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영화를 좋아하고, 특히 SF 영화는 빠짐없이 본다는 구 대표는 "편하게 살자"는 인생 좌우명을 따르고 싶지만 먹고 살 것에 대한 걱정이 또 하나의 일이 됐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타고난 낙천적 성격과 늘 남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을 즐기는 그는 지금도 초우량 조선 기자재업체로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해 밤잠을 설치고 있다.